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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Mobility for all을 위하여(feat.현대 @ CES 2022)

21c형Pilot 2022. 1. 16. 21:44

Mobility for all

언제 어디서부터 사용되었는지 모르지만 "Mobility for all"이라는 캐치 프레이즈는 자율주행 등 미래 모빌리티를 상징하는 말 중 하나가 되었다. 토요타는 2020 도쿄 올림픽을 지원하며 3가지 핵심가치를 내세웠는데 그 첫 번째 역시 'Mobility for all, 모든 사람들의 이동을 자유롭게 만들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자율주행 시대가 우리에게 가져다 줄 긍정적인 비전은 사고율을 현저하게 줄여 도로를 안전하게 만든다는 것도 있지만 장애인, 고령자 혹은 빈곤층 등과 같은 교통 소외 집단에게 평등한 이동의 자유를 가져다 준다는 것을 포함해 왔다. 지난 CES 2020에서 미국 백악관 대통령실과 교통부는 자율주행 가이던스 AV4.0을 공개하며, 자율주행차는 "모든 시민들의 삶의 질과 접근성 그리고 모빌리티의 향상"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했고 운전자를 사람에서 시스템으로 바꿔 인간의 에러를 없앨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1970년대 이후 미국 의회는 장애인들의 접근성을 위해 대중교통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은 너무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운수업 종사자들이 자발적으로 개선해 나가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반응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결국, 이 문제는 1990년 "미국 장애인법(American with Disabilities Act)"으로까지 이어졌다. 신체 능력 및 장애에 의한 차별을 불법으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법은 사회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규정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당시까지 장애인들의 교통 접근성에 대한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예상해 볼 수 있다. 

<일반 차량과 휠체어 탑승 가능 차량의 대기 시간 비교(뉴욕 시)>

'16년에는 보스톤의 택시, 우버 그리고 리프트에서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차량(WAV, Wheelchair Accessible Vehicle)을 일부 운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령자들을 위한 이동 서비스 제공회사인 실버라이드(Silver Ride) 같은 기업들도 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들은 해당 지역에서 너무 긴 대기 시간과 예약 취소라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장애인만을 위한 특별 제작 차량들이 생겨나면, 교통 접근성 향상에 일부 역할을 하겠지만, 도로 위에 차가 더 많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존재했다. '17년에는 우버와 리프트 때문에 대도시 교통 체증이 더 가속화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고 그로 인한 안전 문제, 이동 시간, 환경 오염의 증가를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 자율주행차까지 등장하게 된다면 기존 차량과 맞물려서 더 큰 교통 혼잡과 사회적 손실이 있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따라서 특장 차량은 미래 솔루션이 될 수 없다. 도로 위 교통체증을 늘리는 문제 뿐만 아니라 사용자가 장애인으로 국한될 경우 차량 운행, 유지 및 보수 등 모든 비용이 장애인들에게 부담 될 것도 문제다. 결국, 자율주행차가 환경 및 안전 측면과 접근성 측면에서 모두 성공할 수 있으려면 비장애인들과 동등한 수준의 접근성을 갖는 차량이 필요하다.

https://21cpilot.tistory.com/63

 

[토요타] JPN 택시 탑승기

작년 1월 10월 잠깐 도쿄에 갈 일이 있었는데 토요타의 택시 전용 모델인 JPN TAXI에 실제로 탑승해 보았다. JPN 택시는 2013년도 도쿄 모터쇼에 출품한 JPN TAXI 컨셉 차량을 바탕으로 만들어 졌다. 

21cpilot.tistory.com

이러한 개념에서 나온 솔루션 중 하나가 토요타의 JPN 택시다. JPN 택시는 전기차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2열에 센터 터널을 없애는 기술로 바닥을 편평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휠체어에 탑승한 승객이 굳이 휠체어에서 내리지 않고 그대로 탑승하는 것이 가능하게 했다. 굳이 장애인용 특장차를 만들지 않고도 비장애인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솔루션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한 수준이었다. 사용율은 극도로 저조했고 그 이유는 휠체어를 그대로 차량에 탑승시키는 것이 어렵고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토요타는 휠체어를 JPN 택시에 탑승시키는 방법을 설명하는 메뉴얼을 유튜브에 올렸는데 무려 30분짜리 동영상이었다. 내용은 총 11개 챕터나 되었다. 방법을 요약하면,

운전석 시트 앞으로 당김
조수석 시트 앞으로 당김
운전석에 장착된 요금 트레이 제거
후석 시트 쿠셔 올려서 잠금
슬로프를 꺼내서 휠체어 이동 루트 확보
탑승 완료 및 벨트 체결

간단해 보일지 모르지만 슬로프를 꺼내서 장착하는 작업만 수 분이 소요된다. 복잡한 도심 환경에서 차를 세워두고 이 작업을 하는 것이 절대 만만치 않다. 그리고 해당 영상의 댓글은 현장의 목소리를 그대로 반영해 주고 있었다.

"현직 택시 기사입니다.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설계입니다. 이렇게 느긋하게 셋팅할 수 있는 장소가 현장에 있습니까? 대부분의 손님은 노상에서 승차하기 때문에 이런 수고를 들이고 있으면 주위 교통에 폐를 끼치게 됩니다."

"'사건은 회의실이 아니라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어'라고 외치고 싶습니다. 휠체어 탑승에 관해서는 닛산이 단순해서 훨씬 쉽습니다. 노선 버스의 슬로프처럼 바닥 위를 올려도 슬라이드를 겹납할 수 있도록 만들었어야 했습니다."

"휠체어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혼잡한 거리에서 이런 작동이라면 승차 거부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차를 저도 타고 싶지 않습니다. 너무 번거로워서 기사님에게도 미안합니다."

"토요타는 시엔타 휠체어 사양 모델이라는 좋은 사례가 있는데 왜 이런걸 만든 것이죠? 최악입니다."

"나는 택시 기사는 아닙니다만 이 정도의 복잡함이라면 손님을 태우고 싶지 않습니다."

"택시 기사도 불쌍하고 손님도 불쌍하다.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차에 재팬택시라고 이름 짓지 말아주세요."

예상치 못한 반응 때문이었는지 토요타는 이 영상을 삭제했다. 그리고 현장에서 택시 기사들의 작업성과 안전 문제로 인해 장애인 승객을 받지 않는 승차 거부 문제가 심각해졌고 이는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고 한다.

장애인이나 고령자의 탑승을 지원할 수 있는 운전자가 있는 경우에도 이렇게 어려운데, 만약 자율주행차라면 얼마나 더 어려워지는 것일까? 이런데도 자율주행차가 'Mobility for all'이라고 말할 수 있나? 물론, 모든 장애인들이 휠체어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시각장애인들이 완전히 앞을 보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결국 미래 모빌리티가 Mobility for all, 모두의 이동의 자유라는 슬로건을 자신있게 내세울 수 있으려면 교통 접근성 최약 집단의 이동성을 개선할 수 있어야 한다. 자율주행차 개발에 천문학적 금액이 투자되고 있는데, 그것의 단 1%만으로도 우리사회 교통약자들의 이동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지 않을까는 생각도 스쳐 지나간다. 자율주행이라는 비전은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는 미래에 대한 희망만 심어주고 있는 모습이 강하다.

"정말 훌륭한 기업은 비전 선포 따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들은적 있다. 최근 여러 기업들이 모빌리티가 그리는 미래에 대해 너무 많은 비전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에 대한 일침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기업의 비전만큼 중요한 것은 '실행 전략'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을 것이다. 'Mobility for all'이라는 희망적인 비전을 실행하기 위해 여러 기업들은 어떤 실행 전략을 가지고 있나? 자율주행차 개발이 그것인가?

 

CES 2022 - 현대차 발표

얼마전에 끝난 CES 2022에서 현대자동차는 "Future Robotics"에 대한 키노트 발표를 했다. 자동차 회사가 CES에 참여하는 것도 몇 년전까지는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자동차 회사가 로보틱스에 대한 키노트 발표를 하는 것 역시 굉장한 이슈가 되었다. 국내 한 기사에서는 소니가 전기차를 발표하고, 현대차가 로봇을 발표하는 것을 산업의 경계가 무너졌다고 평하기도 했다.

https://www.chosun.com/economy/tech_it/2022/01/06/WW3GTZYCPNCTJOJLLPNN5DID7Y/

 

전기차 몰고온 소니, 미래차 내부 뛰어든 삼성·LG… 경계가 사라졌다

전기차 몰고온 소니, 미래차 내부 뛰어든 삼성·LG 경계가 사라졌다 여기는 라스베이거스 車·전자회사 합종연횡

www.chosun.com

 

물론 겉으로 보면 그렇다. 하지만 나는 산업의 경계가 사라졌다기 보다는 자동차가 주는 '이동의 가치'를 현대차가 더 확장시키고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평하고 싶다. CES 2022 키노트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이런 말을 했다. 

"Our robotics exsist to expand human reach by moving us beyond limitation."

이후 이어진 발표에서 현대차 로보틱스랩의 헤드인 현동진 상무는 어떤 사물에도 결합해 자유로운 이동을 구현하는 PnD(Plug and Drive) 모듈을 소개하며, 개인 모빌리티에 결합해서 라스트 원 마일 즉, 나의 집앞까지 나의 이동을 지원할 수 있는 장점을 강조했다.

Human Reach라는 철학과 라스트 원 마일에 대한 솔루션. 결국 Mobility for all이 구현되려면 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아무리 자율주행 기술이 고도화된다고 할지라도, 결국 그것이 교통약자들에게도 동등한 가치를 제공해 줄 수 있는지(Human Reach), 차량에 탑승한채 이동하는 구간을 제외한 곳에서의 그들을 어떻게 지원해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 해결책이 없다면 Mobility for all은 일부를 위한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기존에 자동차 기업들은 여기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았다. 자동차를 아름답고 성능 좋게 만들기만 하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사용자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장애인, 고령자 등 교통약자들의 접근성에 우리 사회가 더 관심을 갖게 되고, 또 앞으로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며 더 많은 사람들이 크고 작은 장애를 갖고 살아갈 가능성이 높아지며 평등한 모빌리티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게 되었고, 로보틱스는 현대차가 제안하는 솔루션 중 하나 하나가 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zl6AkDQcRM

https://www.youtube.com/watch?v=xbkPnWRnIr8

실제로  현대차는 지난 CES 2017에서는 스스로 보행이 어려운 장애인들을 위한 외골격 로봇인 H-Lex를 선보였고, 2년 전에는 작업자들의 육체 피로도를 줄여주고 신체 한계를 극복하게 해주는 웨어러블 로봇 VEX(Vest Exoskeleton)의 개발을 완료했다. 이번 CES 2022에서 PnD 모듈을 공개함으로써 "로보틱스로 개인의 신체적 한계를 뛰어 넘게 해준다." 일관된 비전과 그에 대한 실행 전략을 보여주고 있다.

차를 타러 가는 나를 더 편하게 해주는 모빌리티, 운전자의 도움 없이도 내가 차에 조금 더 편하게 탑승하고 내릴 수 있게 도와주는 모빌리티, 그리고 차에 내려 내 집앞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는 모빌리티의 역할이 로보틱스에 있다. 현대차의 로보틱스는 바로 여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또 그런 방향성을 갖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서 자율주행 기술이 완성되면 마침내 Mobility for all이라는 가치가 실현되는 것이다. 절대, 자율주행이 모든 키를 쥐고 있지 않다. 현대차의 이번 CES 2022에서의 발표 내용과 향후 로보틱스 사업은 이러한 기대와 함께 지켜보아도 좋을 것 같다.